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처칠 (문단 편집) == 특징 == [[제2차 세계 대전]] 당시 영국의 전시 수상인 [[윈스턴 처칠]]의 먼 조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. 한때 그의 평가는 부정부패 혐의로 인해 실추되었으나 후손인 윈스턴 처칠이 그의 전기를 쓰면서[* 2차대전 당시 영국의 전시 총리로 주로 기억되지만 문학적 성취도 대단한 문인이기도 하다. 1953년 '제2차 세계대전사'라는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.] 많이 회복되었다. 존 처칠은 원래 1남 4녀를 두었으나 아들은 어려서 요절하고, 공작위는 맏딸 헨리에타가 이어받았다. 하지만 존 처칠의 외손자들 중 후손을 남긴 건 스펜서 가문과 결혼한 셋째 딸 앤의 차남 [[찰스 스펜서|찰스]]와 삼남 존 뿐이었다.[* 이들의 원래 성씨는 스펜서였으나, 말버러 공작위를 이어받은 찰스의 손자대부터는 스펜서-처칠 성씨를 썼다. 윈스턴 처칠도 원래 성씨는 스펜서-처칠이다.] 찰스의 후손은 말버러 공작가로 이어져 내려가는데 윈스턴 처칠이 이 말버러 공작가 출신이다. 존의 후손은 존의 아들인 [[존 스펜서#s-2|존]]이 스펜서 백작위를 받으면서 스펜서 백작가로 이어져 내려가는데 그 직계후손이 [[다이애나 스펜서]]다. 즉, 스펜서 가문은 그 전부터 있었고 '''존 처칠은 공식적으로는 스펜서 가문의 구성원인 적이 없다.''' 다만 현재의 스펜서 가문의 외가쪽 조상이기 때문에 존 처칠을 스펜서 가문으로 분류하는 사람들도 존재하고 있다. 경제사에서 길이 남을 [[버블]]인 [[남해거품사건]]과 약간의 인연이 있다. 이 남해거품사건은 존 처칠의 만년 시기인 1720년에 터졌는데, 존의 아내인 사라 처칠은 이 때 거품을 이용해서 주식 투기로 큰 돈을 번 소수의 행운아 중 한명이었다. 당시 화폐 기준으로 약 10만 파운드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. [[찰스 2세]]의 정부 1대 클리블랜드 여공작 [[바바라 팔머]]의 스폰을 받는 처지였는데, 1년에 5,000파운드를 받아 가면서도 도박판에서 푼돈 좀 잠시 빌려달라는 말을 거부해 분개한 바바라가 코피를 흘리며 코르셋 끈을 잡아 뜯었다고 한다. 둘이 [[정사#s-4]]를 나누다 찰스 2세에게 걸린 적도 있는데 다급하게 창밖으로 뛰어내린 존 처칠을 향해 찰스 2세는 "짐은 너를 용서한다. 너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일 테니"라고 차갑게 말하고 자리를 떴다고 한다. 참고로 찰스의 누이 아라벨라는 찰스 2세의 내연녀였으며, 그의 네 자녀를 두었다. 즉, 제임스는 왕의 동생의 내연녀의 동생이었고, 바바라는 내연남의 동생의 내연녀의 동생을 또 다른 내연녀였던 셈. [[유네스코 세계유산]]으로 지정된 [[블레넘 궁전|블레넘 궁]]은 블레넘 전투의 승전 기념으로 받은 것이며, 공작 가문이 거주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